로마의 삼두 정치에 관해서

로마의 삼두 정치는 크랏수스의 사이에 맺어진 사적 맹약이라 볼 수 있다. 이 3인은 국정을 독점할 목적으로 크랏수스 및 폼페이우스는 B.C. 60년의 콘술이 되고,퇴직 후 품페이우스는 에스파니아, 크랏수스는 시리아를 5년 동안 지배할 것, 케사르는 B.C. 59년의 콘 술이 되고, 퇴직 후 갈리아 키살피나 및 일리리쿰을 지배할 것을 협정하였다.



3인의 결합은 굳은 것이 아니어서 이 협정은 B.C. 56년 루카 회담에서 재확인되었다. B.C. 54년 케사르의 딸로서 폼페이우스의 처가 된 율리아가 죽고, B.C. 53년 크랏수스가 동방에서 전사하자, 맹약은 해소되고, 폼페이우스와 케사르가 대립하였는데, 폼페이우스가 패하자 케사르가 독재를 하였다.


로마의 삼두 정치는 B.C. 43년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가 호민관 티티우스의 제안에 의해 공식적으로 임명된 국가 재건 3인 위원의 정치, 3인은 권력 지배를 합법화하여 5개년간의 독재적 권력을 얻어, 일체의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3백 명의 원로원의원과 2천명의 기사 계급에 있는 자들을 살행했다. 또 안트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필립피 싸움에서 브루투스와 캇시우스의 공화파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그 뒤 3인의 세력 쟁탈이 일아나 브룬디시움, 타렌툼에서 3자가 회다맣여 협약을 갱신하였으나 레피두그사 탈라갛고,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대립하여 B.C. 31년 악티움해전 결과 옥타비아누스가 단독 지배자로 군림하게 되었는데 이를 로마의 삼두 정치의 대략적인 내용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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