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 문명의 사전적인 의미

B.C.2500년경을 중심으로 약 1,000년간 인더스 강 유역에 번창하였던 고대 문명을 인더스 문명이라 볼 수 있다. 인더스 서안 모헨조다로의 고대 유적이 확인 된 이후, 상류의 하랍파 등지에 대규모적인 발굴이 있었고, 이에 따라서 이 직역의 문명이 계속 드러나게 되었다.

출토된 많은 인장에는 문자가 새겨져 있어 인더스 문자로 유명하지만, 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전히 해독되지 못하고 있다. 인더스 강의 충적토에 매몰된 인더스 문명은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 대체로 7층으로 나누어지고 있는데, 그 사이의 시대 차는 최상층에서 최하층에 이르기까지 수백년으로 잡고 있다.


인더스 문명의 특징의 하나는 정연한 도록에 계획적으로 건설된 도시라 하겠다. 일반적으로 구운 벽돌이 사용되었고, 가옥 내부에는 배수 시설이 있어, 이는 도로 밑의 배수구로 통하게 되어 있다.

또한 소맥과 대맥의 낱알이 발견된 것은 당시 이 곡류들이 주식물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태새 토기, 석기, 청동기, 은기 등도 출토되고 있으며, 장신구의 기술도 진보되었던 것 같다. 문자가 새겨진 인장은 확석제로서, 동물 문양이 조각된 것도 있다.


이 외에 조각품으로서 여신상 등 뛰어난 것도 있다. 이는 그 당시에 모신 신앙이 유행되고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자연 숭배, 성기 숭배 사상도 있었으리라 추측케 하는 유물도 나타나 있다. 인더스 문명의 기원이나 그 전파 경로 등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었다.


슈메르 문명 및 메소포타미아 문명과의 많은 유사점도 보이며, 또 아프간 대지 남방의 출토품과도 흡사한 유물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 정설이 없다. 농경을 주로 하고 우상 숭배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여지므로 그 후의 베다 시대의 인도 문명에도 그대로 계승되지 않았으며, 또한 드라비다족이 세운 문명이라는 설도 확증이 없다.


인도, 아리안에게 이 문명의 기원을 돌리는 설도, 이부의 힌두교 정통파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오늘날까지 거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으나, 고대힌두교가 이 인더스 문명 시대의 신앙 양식에서 여러가지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것으 인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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