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롱드(Fronde)의 난 - 역사적 배경

프랑스의 부르봉 왕권에 대한 귀족 세력의 최후의 반항에 의하여 일어났던 내란을 프롱드(Fronde)의 난이라고 한다. 프롱드라 함은 투석기의 뜻인데, 제1회는 고등 법원의 프롱드(1648~1649), 제2회는 귀조의 프롱드(1649~1653)이다. 구이 14세의 즉위 당시, 모후와 재상 마자랭이 정권을 잡고 있었는데 파리의 고등 법원이 칙령의 등록을 거부당함으로써 왕권에 반항하여 왕실도 한때는 피난하여 파리를 퇴각하였으나, 왕당파의 콩데 공에 의하여 반란은 집압되었다.


그러나 콩데 공은 마자랭과의 반목으로 체포되었는데, 지방에서는 반왕당파 귀족이 동맹하여 반항하였으므로 왕실과 마자랭은 다시금 파리를 퇴각하였다. 파리는 콩데 군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에스파니아의 원조를 받고 있었으므로 파리 시민의 반감을 사서 드디어는 왕당파에 의해 탄압되어 왕실은 파리로 귀환하였다.


이 프롱드의 난은 프랑스에 있어서의 귀족 세력(봉건귀족·법복귀족)의 왕권에 대한 최후의 반란이었으며, 브르봉 절대 왕권 확립의 길을 터놓은 것으로서의 의의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