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프전쟁의 발발 원인

베트남을 둘러싸고 청과 프랑스의 사이에 일어난 전쟁을 청프전쟁이라 한다. 베트남은 18세기말 이래로 청나라의 번속국이었는데, 19세기초에 완왕조가 흥기할 때 프랑스의 선교사의 도움을 받았으므로, 이를 계기로 하여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진출이 시작되어, 1862년 나폴레옹 3세가 출병, 사이공 조약을 맺어 코친 차이나를 합병하고, 캄보디아를 보호국화 하였다.

청프전쟁

다시 1874년 프랑스는 베트남과 조약을 맺어 윈난방면으로 통하는 송코이 강의 항해권과, 통킹 지방에 있어서의 군사 주둔권을 얻었다. 이후 통킹 지방에 무역장이 열리고 프랑스인의 왕래가 빈번하게 되자, 베트남 관헌과의 충돌이 종종 일어났고 베트만은 태평 천국의 잔당이라 볼 수 있는 흑기군의 수령 유 영복과 연락하여 프랑스인을 압박하려 하였는데, 1882년 프랑스는 출병하여 하노이를 점령하였다.

청프전쟁

다음 해 프랑스에 새 내각이 성립되자 다시 적극책을 써서, 쿠르베 제독이 이끄는 함대가 국도인 위에를 위협하였기 때문에, 베트만은 이에 굴복하여 조약을 맺고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었다.

청조는 베트남이 중요한 번속국이였으므로, 사이공 조약 이래 누차 항의하여 프랑스의 행동을 승인하지 않다가, 이에 이르러 드디어 강경책을 써서 청병을 통킹 지방에 파견하여 프랑스 군을 위협하였다.

청프전쟁

한편 청의 리 홍장은 프랑스 함장 푸르니에와 협약을 맺어 사건을 해결하여 하였으나, 1884년 5월 국경에 가까운 랑손에서 청·프 양군이 충돌아혀 청프전쟁이 시작되었다. 쿠르베 함대는 청국함을 푸조우 만에서 격침하고 타이완의 여러 항구를 봉쇄하였다.

청프전쟁

통킹 지방에서는 다음 해 청군이 프랑스 군을 랑손으로부터 격퇴시켰는데, 청국 총세무사 하아트 등의 알선에 의하여 6월에 텐진 조약을 맺어 강화가 성립되었다. 이리하여 베트남은 청은 번속국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하여 프랑스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말았다. 이것으로 청프전쟁의 발발 및 결과에 대해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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