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 운하 건조과정

홍해와 재중해를 연결하는 운하로서, 프랑스인 레셉스에 의해 1869년 가을에 완성되었다. 나일 강과 홍해를 잇는 운하 계획은 일찌기 고대 이집트의 여러 왕조 때 있었고, B.C. 3세기경에는 지중해 무역이 성행하자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시키려는 운하 계획이 있었던 것 같다. 아래는 수에즈 운하 건조과정에 대한 내용이다.


15,6세기에도 유럽의 상업적 발전에 따라,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이 수에즈 운하 건설 계획을 논의한 바 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자본주의 경제 발달로 운수 교통로의 단축이 절실하게 되자 이집트는 프랑스의 후원 아래 운하 계획을 추진하였는데, 사이드 파샤의 시대(1854~1863)가 되어, 프랑스인 레셉스를 초빙하고 1854년 만국 수에즈 운하 회사를 설립하였다.

영국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찬부양론이 비등하였지만, 결국 이집트 정부와 프랑스 정부가 대부분의 출자를 맡고, 1859년 4월에 포오트사이트 쪽부터 착공하기 시작하여, 1863년에 완성, 1869년 11월에 개통을 보았다. 수에즈 개통은 세계 교통사상 획기적인 의의를 가지는 것으로 근대 자본주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다.


그러나 이집트측의 재정적 곤란을 틈타 1875년 영국은 운하의 주를 반 이상 매수한 후, 이집트를 사실상 종속국으로, 1914년 이후는 보호국으로 만들어 영국의 수에즈 운하에 대한 세력이 확립되었다.

그 후 영국은 이집트 왕국과 동맹하여 수에즈 운하 지대의 주병권을 얻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집트의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되자, 영국군의 수에즈 주둔권을 둘러싸고 양국가에 중대한 분규 문제가 등장하여 1954년 영국군이 철퇴하기 시작, 1956년에 철병을 완료하였다.


그러나 1956년 7월 이집트 공화국은 애스원 댐 건설 자금 때문에 운하의 국유화를 단행하였다. 그 해 10월 29일 이스라엘이 팔레스티나 문제로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에 진격하자 운하의 이권을 가지고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에 침입하여 중대한 국제 문제를 일으켰다.

그 뒤 운하 관리에 대하여 국제 연합이 중심이 되어 교섭이 진행된 결과, 완전히 이집트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1967년의 중동 전쟁으로 시나이 반도가 이스라엘 손에 들어가자 운하는 폐쇄되었다가 1975년 6월 5일 재개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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