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남부의 공국이며, 민족 대이동 후 서게르만의 혼혈 종족인 바요바리인이 정착, 6세기에 프랑크 왕국에 복속한 것이 바이에른 공국이라 한다. 오토 대제 때 그의 아들 하인리히가 바이에른 공으로 봉해지고, 하인리히 2세는 신성 로마 황제가 되었다.
공가가 단절된 후 11세기에는 벨펜가에 옮겨졌고, 12세기 이후는 비텔스바하가가 지배하였다. 종교 개혁에는 황제와 결탁하여 프로테스탄트 파에 대항하였다. 막시밀리안 1세는 카톨릭 제후 연맹의 지도자로서 30년 전쟁에서도 카톨릭 파의 선두에 서서 싸웠으며, 선제후위를 얻었다.
바이에른 공국의 합스부르크가의 카알 6세의 사후 카알 알브레히트가 제위 계승권을 주장하여 오스트리아 계승 전쟁을 일으켰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어서 카알 테오도르 때 바이에른 계승 전쟁을 초래하여 약체화되었으나, 나폴레옹 전쟁에서는 프랑스에 가담하여 많은 이득을 보고, 1806년 왕국으로 승격하였다.
프로이센·오스트라아 전쟁에서는 오스트리아에 가담하여 패전하였으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는 프로이센 쪽에 가담하여 싸움으로써 1871년 독일 제국의 성립을 승인받아, 그의 한 지방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혁명으로 공화국이 되었으나, 경제적, 문화적 발전이 늦어 보수 세력이 강하였으며, 나찌스도 이 공화국의 뮌헨에서 일어났다.
바이에른 공국의 합스부르크가의 카알 6세의 사후 카알 알브레히트가 제위 계승권을 주장하여 오스트리아 계승 전쟁을 일으켰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어서 카알 테오도르 때 바이에른 계승 전쟁을 초래하여 약체화되었으나, 나폴레옹 전쟁에서는 프랑스에 가담하여 많은 이득을 보고, 1806년 왕국으로 승격하였다.
프로이센·오스트라아 전쟁에서는 오스트리아에 가담하여 패전하였으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는 프로이센 쪽에 가담하여 싸움으로써 1871년 독일 제국의 성립을 승인받아, 그의 한 지방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혁명으로 공화국이 되었으나, 경제적, 문화적 발전이 늦어 보수 세력이 강하였으며, 나찌스도 이 공화국의 뮌헨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