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노제의 시초 및 해체 과정

서양 중세의 봉건적 생산 양식을 특징짓는 생산 관계를 농노제라 한다. 영주는 생산 수단인 토지를 소유하고, 생산자인 농노는 신분적으로 영주에 예속, 영주 재판권에 복정하고, 토지에 매여서 이전의 자유가 없었다.


다만 인격을 인정받은 점만이 노예와 다른 바자유민이라는 것이다. 농노제는 국가 및 단계에 따라서 여러 형태를 보여주나, 가장 고전적인 형태는 빌리카치온, 즉 고전 장원제도로서, 이는 영주 직영지와 농민탁영지로 구성되어 , 농노는 직영지 경영을 위해 부역 노동을 제공하였다.


그 후 여러 가지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고전 장원은 해체되었는데, 그 과정에는 다음 두 가지 형이 있다. 그 하나는 프랑스와 서남 독일의 경우로서, 노동 지대에서 생산물 지대, 화폐 지대라는 일반적 과정을 밟는 것과 다른 하나는 영국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노동 지대에서 화폐 지대라는 비약적 과정을 밟은 것이 있다.


즉 프랑스에서는 12세기에, 서부 독일에서는 13세기에 고전 장원이 해체되어 지대는 생산물 지대, 이어서 화폐 지대 형태로 전화되고, 아울러 농민층의 상승 현상이 보이나, 16세기경부터 봉건 반동이라고 불리는 봉건적 지배가 재강화되어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으로, 서부 독일에서는 그 영향하에 농노제의 폐기가 이루어졌다.


영구에서는 14~15세기에 노동 지대가 화폐 지대로 전면적으로 전화되어, 15~16세기에는 부유하고 자유로운 독립 자영 농민, 즉 요우먼이 성립하여 사실상 농노제는 해체되었다. 프로이센에서는 16세기 이후 봉거적 토지 귀족에 의해 구츠헤르샤프트가 형성되어 농노제가 재편되었으나, 프로이센 개혁, 농노 해방에 의해 불펄저하지만 폐지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19세기까지 강력히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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